축구선수 인물전

R9! 호나우두 나자리우 일대기|축구의 황제가 되기까지

라인너머 2026. 8. 3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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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나우두 나자리우 일대기 ⚽🇧🇷

세상이 ‘현상’이라 부른 소년, 무너진 무릎을 딛고 다시 월드컵 영웅이 되기까지

안녕하세요! 😊

오늘은 정말 특별한 축구선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호나우두 나자리우! ⚽🔥

입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가 요즘 많이 이야기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아닙니다. 😆
 
오늘 이야기할 선수는 브라질의

호나우두 루이스 나자리우 지 리마.

흔히

R9

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선수입니다.
 
축구를 오래 본 분들은 아마 이런 모습이 떠오를 거예요.

아주 짧은 검은 머리.

노란색 브라질 9번 유니폼.

엄청나게 굵은 허벅지.

공을 발에 붙이고 달려가는데...

수비수 한 명을 제치고,

또 한 명을 제치고,

마지막에는 골키퍼까지 제쳐버리는 선수. 😨
 
호나우두에게는 아주 유명한 별명이 있습니다.

오 페노메노(O Fenômeno)

우리말로 하면

‘현상’

정도의 뜻이에요.
 
쉽게 말하면

“이런 선수는 전에 본 적이 없다.”

라는 느낌으로 붙은 별명입니다.
 
그런데 호나우두의 인생을 처음부터 보면 더 놀랍습니다.

17살에 월드컵 우승팀에 들어갔습니다.

20살에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가 됐습니다.

21살에는 발롱도르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가장 잘해야 할 나이에...

무릎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한 번도 아니었습니다.

다시 일어서려고 했는데 또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은

“호나우두는 이제 끝났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02년.

한국과 일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두 골을 넣었습니다.

브라질을 세계 챔피언으로 만들었습니다. 🏆

저는 호나우두의 인생이 단순히

“축구를 엄청 잘했던 선수 이야기”

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끝났다고 생각한 천재가 다시 세계 최고가 된 이야기”

에 더 가깝습니다.

처음부터 하나씩 알아볼게요! 😊


👦 시작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였습니다

호나우두는 1976년 9월 22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습니다. (Real Madrid CF | Web Oficial)
 
호나우두의 가족은 아주 부유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호나우두에게 가장 재미있는 것은 역시 축구였습니다.

브라질에서는 골목,

공터,

작은 풋살장에서도 아이들이 공을 차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죠.
 
호나우두도 처음에는 큰 축구장이 아니라 풋살을 많이 했습니다.

풋살은 축구보다 경기장이 훨씬 작습니다.

그러니까 공을 잡으면 상대방이 바로 달려옵니다.

생각할 시간도 많지 않아요.

그래서

⚡ 빠른 판단

🦶 작은 공간의 드리블

🎯 가까운 거리에서의 슈팅

을 자연스럽게 많이 연습하게 됩니다.
 
훗날 호나우두가 큰 몸을 가지고도 공을 너무 부드럽게 다룰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로 어린 시절 풋살 경험이 자주 이야기됩니다.



⚽ 16살, 크루제이루에서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호나우두는 브라질의 상크리스토방을 거쳐 명문 크루제이루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1군에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그냥

“괜찮은 유망주가 등장했네.”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골을 엄청나게 넣기 시작했습니다. 😮
 
호나우두는 이미 10대인데도

몸싸움을 버티고,

수비수보다 빠르고,

골키퍼와 일대일이 되면 너무 침착했습니다.
 
특히 재미있는 건 호나우두가 골키퍼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보통 공격수는 골키퍼가 뛰어나오면 빨리 슛을 합니다.

호나우두는 오히려...

골키퍼 가까이까지 갔습니다.

골키퍼가 먼저 움직이는 걸 보고

한쪽으로 공을 툭 밀어놓고,

골키퍼까지 제친 뒤 빈 골문에 넣었습니다.

이게 나중에는 호나우두의 대표 기술처럼 됐습니다.


🌎 그리고 17살에 월드컵에 갑니다

1994년.

브라질 대표팀이 미국 월드컵에 나갑니다.

그런데 명단에 아주 어린 공격수 한 명이 들어 있었습니다.

17살 호나우두. 😮

였습니다.
 
당시 브라질의 주전 공격수는

호마리우

베베토

였습니다.

둘이 너무 잘했기 때문에 어린 호나우두가 실제 경기에 출전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브라질은 결국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니까 호나우두는 17살에 이미

월드컵 우승 메달

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직접 경기를 뛰며 만든 우승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같은 대표팀에서 생활한 경험 자체가 어린 선수에게는 엄청난 공부였을 것 같습니다.


🇳🇱 18살, 유럽으로 갑니다

1994 월드컵이 끝난 뒤 호나우두에게 유럽의 관심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로 가지 않았습니다.

선택한 팀은 네덜란드의

PSV 에인트호번

이었습니다.
 
브라질 선배 호마리우도 PSV에서 뛰었던 경험이 있었어요.

유럽축구에 적응하면서 성장하기 좋은 팀이라고 판단한 것이죠.
 
그리고 결과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PSV에서 두 시즌 동안 57경기 54골을 기록했습니다. (PSV)

거의

한 경기 = 한 골

에 가까운 기록입니다. 😨


😆 유럽 수비수들도 별로 소용이 없었습니다

브라질에서 잘한다고 유럽에서도 무조건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날씨도 다르고,

축구 스타일도 다르고,

수비수도 훨씬 강합니다.
 
그런데 호나우두는 별로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첫 리그 시즌부터 30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올랐습니다. (PSV)
 
특히 호나우두가 이상했던 것은 체형입니다.

다리는 엄청 굵었습니다.

몸도 튼튼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빨랐습니다. 💨

큰 공격수는 힘이 좋지만 조금 느린 경우가 많고,

빠른 공격수는 몸싸움에서 밀리는 경우가 있잖아요.

호나우두는

힘도 좋은데 빨랐습니다.

여기에 드리블까지 됐습니다.

이때부터 유럽에서도

“이건 평범한 공격수가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 1996년, 바르셀로나가 호나우두를 데려옵니다

이제 호나우두는 19살입니다.

그런데 이미 유럽 최고의 공격수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결국 스페인의 명문

FC 바르셀로나

가 호나우두를 영입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축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개인 시즌 가운데 하나가 나옵니다.

1996-97시즌.

호나우두는 바르셀로나에서 공식전

49경기 47골.

을 기록했습니다. 😨 (FC Barcelona Players)
 
라리가에서는

37경기 34골.

득점왕을 차지했습니다.

유러피언 골든슈도 받았습니다. (FC Barcelona)

나이는 겨우...

20살.

이었습니다.


😨 저는 이 시기의 호나우두가 가장 무섭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전에

최전성기 스트라이커 TOP 10

을 만들면서 R9을 1위로 골랐잖아요.

제가 말한 바로 그 호나우두가 이때입니다.

1996~1998년.

몸이 가장 가벼웠고,

무릎이 크게 망가지기 전이었습니다.
 
공을 잡고 달리기 시작하면

수비수가 몸을 붙입니다.

호나우두가 버팁니다.

다른 수비수가 옵니다.

공을 살짝 옆으로 옮깁니다.

둘을 지나갑니다.

골키퍼가 뛰어나옵니다.

골키퍼도 제칩니다.

그리고 넣습니다.

너무 단순하게 골을 넣어서 오히려 이상합니다. 😂


🏃‍♂️ 전설의 ‘콤포스텔라 골’

1996년 10월.

바르셀로나와 콤포스텔라의 경기였습니다.

호나우두가 자기 진영 근처에서 공을 잡았습니다.
 
수비수가 붙습니다.

호나우두가 몸싸움을 버팁니다.

한 명을 지나갑니다.

두 번째 수비수가 옵니다.

또 지나갑니다.

세 번째도 옵니다.

계속 달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골까지 넣습니다. 😨
 
벤치에 있던 바르셀로나 감독 보비 롭슨은 그 장면을 보고 머리를 감싸 쥐었습니다.

마치

“방금 내가 뭘 본 거지?”

하는 모습이었어요.

지금까지도 바르셀로나가 호나우두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대표 골입니다. (FC Barcelona)



🏆 한 시즌밖에 없었는데 우승컵도 세 개였습니다

바르셀로나는 그 시즌

🏆 코파 델 레이

🏆 스페인 슈퍼컵

🏆 UEFA 컵위너스컵

을 우승했습니다.

컵위너스컵 결승에서는 호나우두가 직접 결승골도 넣었습니다. (FC Barcelona)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호나우두의 바르셀로나 생활은

딱 한 시즌

으로 끝납니다.


😮 왜 이렇게 잘했는데 바르셀로나를 떠났을까요?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잘했습니다. 😂
 
계약 연장과 조건을 두고 구단과 호나우두 측 사이에 협상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1997년 여름,

이탈리아의 명문

인터 밀란

이 호나우두를 데려갑니다.
 
이적료도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는 호나우두에게 새로운 별명이 더욱 강하게 붙습니다.

Il Fenomeno

‘현상’

입니다.


⚫🔵 이탈리아는 당시 수비수들의 나라였습니다

1990년대 세리에A를 생각하면 정말 무서운 수비수들이 많았습니다.

말디니.

네스타.

칸나바로.

튀랑.

코스타쿠르타.

페라라.

같은 선수들이 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이탈리아 축구는 수비 전술도 굉장히 강했습니다.

그래서

“호나우두가 스페인에서는 저렇게 했어도 이탈리아에서도 가능할까?”

하는 관심이 컸습니다.

그런데...

가능했습니다. 😅


🏆 인터 첫 시즌부터 UEFA컵 우승

호나우두는 인터 밀란 첫 시즌부터 팀의 중심이 됐습니다.

그리고 1998년 UEFA컵 결승에서 라치오를 만납니다.
 
호나우두가 골키퍼와 일대일이 됩니다.

공을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입니다.

골키퍼가 완전히 중심을 잃습니다.

호나우두가 골키퍼까지 지나갑니다.

그리고 빈 골문에 넣습니다.

인터가 3대0으로 승리하고 우승합니다.
 
바로 이런 장면 때문에

호나우두 = 골키퍼까지 제치는 공격수

라는 이미지가 더욱 강해졌습니다.


🥇 그리고 21살에 발롱도르를 받습니다

1997년.

호나우두는

발롱도르를 수상했습니다.

나이는 21살이었습니다. (FC Barcelona)
 
오늘날에도 발롱도르는 축구선수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유명한 개인상 가운데 하나죠.

그런데 20대 초반에 이미 세계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1996년과 1997년에는 FIFA 올해의 선수에도 선정됐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기 호나우두는

‘미래에 세계 최고가 될 유망주’

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세계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 그리고 1998 프랑스 월드컵이 찾아옵니다

이번에는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1994년에는 어린 후보선수였습니다.

1998년에는...

브라질의 에이스.

입니다.
 
등번호도 9번.

모든 사람이 호나우두를 바라봤습니다.

호나우두는 대회에서 4골을 넣었고,

브라질은 결승까지 올라갔습니다. (FIFA)
 
상대는 개최국

프랑스. 🇫🇷

이었습니다.

그런데 결승전 당일,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 결승 몇 시간 전, 호나우두에게 이상이 생겼습니다

결승을 앞두고 브라질 선수들이 쉬고 있던 숙소에서 호나우두에게 갑자기 건강 이상이 발생했습니다.

동료들이 놀라 의료진을 불렀고,

호나우두는 검사를 받았습니다.
 
처음 발표된 선발 명단에서는 호나우두의 이름이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경기 직전 다시 선발 명단에 포함됐습니다.

결국 호나우두는 결승전에 출전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던 폭발적인 모습은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브라질은 지네딘 지단이 이끈 프랑스에게

0대3

으로 패했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이후 정말 많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당시 정확히 왜 그런 이상이 발생했는지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가 존재했고, 근거 없는 음모론까지 섞였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함부로

“○○ 때문에 경기력이 나빴다.”

라고 단정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분명한 것은 월드컵 결승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호나우두에게 심각한 건강 이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진짜 시련은 월드컵이 아니었습니다

1998년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호나우두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였습니다.

아직 22살 정도였습니다.

앞으로 10년은 더 세계를 지배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호나우두의 가장 무서운 상대가 나타납니다.

수비수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무릎.

이었습니다.


🦵 1999년, 오른쪽 무릎에 큰 부상이 찾아옵니다

호나우두는 인터에서 뛰다가 오른쪽 무릎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축구를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천천히 재활했습니다.

다시 걷고,

다시 뛰고,

다시 공을 찼습니다.

그리고 2000년 4월.

드디어 경기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축구팬들은 정말 기다렸습니다.

“호나우두가 돌아왔다!”

그런데 복귀전에서...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납니다.


😭 복귀하자마자 다시 무릎이 무너졌습니다

코파 이탈리아 라치오전.

호나우두가 교체로 들어옵니다.

경기장에서는 큰 박수가 나왔습니다.

오랜 재활 끝에 돌아온 세계 최고의 공격수였으니까요.
 
그런데 공을 잡고 상대를 돌파하려던 순간...

호나우두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무릎을 붙잡았습니다.

이번에는 오른쪽 무릎의 슬개건이 완전히 파열되는 매우 큰 부상이었습니다.
 
선수들과 관중도 바로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수술.

또 재활.

그리고 아주 긴 기다림이 시작됐습니다.



🥺 사람들은 정말 호나우두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 큰 무릎 부상을 당한 것도 무서운데,

재활해서 돌아온 직후 같은 무릎이 다시 크게 망가졌습니다.
 
게다가 호나우두의 가장 큰 무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 폭발적인 스피드

🦵 강력한 첫발

↔️ 순간적인 방향 전환

이었습니다.

전부 무릎에 엄청난 부담이 가는 움직임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예전처럼 다시 뛸 수 있을까?”

“아니, 프로선수로 다시 뛰기는 할 수 있을까?”

그때 호나우두는 아직 20대 초반이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가장 빛나야 할 나이에

걷고 뛰는 것부터 다시 배워야 했습니다.


🏃 정말 긴 재활이 시작됩니다

호나우두는 재활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근육을 다시 만들고,

무릎을 움직이고,

천천히 뛰고,

공을 다시 찼습니다.
 
재활 과정은 1년을 훨씬 넘겼습니다.

2001년이 되어서야 조금씩 경기에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시즌 전체를 건강하게 뛰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 흘렀습니다.

이제 2002년 월드컵이 가까워졌습니다.

사람들은 궁금했습니다.

“호나우두를 정말 월드컵에 데려가도 되는 걸까?”


🇧🇷 그래도 브라질은 호나우두를 믿었습니다

브라질의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 감독은 호나우두를 월드컵 명단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최전방 공격수로 사용했습니다.
 
그 앞뒤에는 정말 엄청난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히바우두

호나우지뉴

그리고

호나우두.

세 선수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3R

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
 
문제는 호나우두가 예전 호나우두인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첫 경기가 시작됩니다.


⚽ 터키전, 호나우두가 골을 넣습니다

첫 경기 터키전.

호나우두가 골을 넣었습니다.

“오...?”

사람들이 조금씩 기대하기 시작합니다.
 
중국전에서도 골.

코스타리카전에서는 두 골.

16강 벨기에전에서도 골.

준결승에서 다시 만난 터키전에서도 골.
 
그렇게 결승까지 올라왔을 때 호나우두의 득점은

6골.

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상대는

독일이었습니다.


✂️ 그런데 결승보다 먼저 ‘이상한 머리’가 화제가 됐어요 😂

2002 월드컵 호나우두를 검색하면 아주 특이한 머리가 나옵니다.

머리는 거의 다 밀었는데...

앞머리 부분만

삼각형처럼 조금 남겨놓은 헤어스타일.

입니다. 😂
 
호나우두는 나중에 당시 사람들이 자신의 몸 상태와 부상 이야기만 계속하는 것이 싫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머리로 돌리려고 일부러 이상한 헤어스타일을 했다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성공했습니다.

다음 날 사람들이

“호나우두 무릎 괜찮을까?”

보다

“호나우두 머리 뭐야?! 😂”

를 더 많이 이야기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헤어스타일은 며칠 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선수 머리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 2002년 6월 30일, 모든 것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월드컵 결승.

브라질 대 독일.

일본 요코하마였습니다.
 
독일 골키퍼는

올리버 칸.

대회 내내 엄청난 선방을 보여준 최고의 골키퍼였습니다.

경기는 0대0으로 팽팽했습니다.
 
후반전.

히바우두가 슈팅합니다.

칸이 공을 막았지만 완전히 잡지 못합니다.

공이 앞으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그곳에 누가 있었을까요?

호나우두.

였습니다.

슛.

골! ⚽🔥

브라질이 앞서갑니다.


⚽ 그런데 한 골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후반 34분쯤.

브라질이 다시 공격합니다.

클레베르송의 패스를 히바우두가 흘려줍니다.

그 뒤에서 호나우두가 나타납니다.

오른발 슛.

공이 골문 구석으로 들어갑니다.

브라질 2 : 0 독일

그리고 경기가 끝났습니다.

🏆 브라질 월드컵 우승!

호나우두가 결승에서 두 골을 넣었습니다.

대회 전체에서는

8골.

월드컵 득점왕이 됐습니다. (Inside FIFA)


🥹 4년 전에는 결승전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1998년.

결승전을 앞두고 건강 이상.

프랑스에 0대3 패배.
 
1999년.

무릎 부상.

2000년.

복귀하자마자 다시 무릎 파열.

1년 넘는 재활.

그리고 사람들의 말.

“이제 예전의 호나우두는 없다.”

그런데 2002년.

다시 월드컵 결승에 섰습니다.

그리고...

혼자 두 골을 넣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호나우두의 수많은 기록 가운데

2002년 월드컵이 가장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잘하는 선수가 우승한 이야기만은 아니니까요.

다시 축구를 할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했던 선수가 세계 최고의 무대로 돌아온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다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됐습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

호나우두는 다시

발롱도르

를 받았습니다.

1997년에 이어 두 번째였습니다. (Real Madrid CF | Web Oficial)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합니다.

첫 발롱도르를 받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건강한 천재 공격수

였습니다.

두 번째 발롱도르를 받을 때는

두 번의 큰 무릎 부상을 이겨내고 돌아온 선수

였습니다.

같은 사람이지만 완전히 다른 의미의 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가 데려갑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

호나우두의 새로운 팀은

레알 마드리드

였습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에는 정말 유명한 선수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지네딘 지단.

루이스 피구.

라울.

로베르투 카를루스.

데이비드 베컴까지 나중에 합류합니다.

이 팀을 흔히

갈락티코스 🌟

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축구계의 별들을 한 팀에 모은 것이죠.

그리고 그 최전방에

호나우두가 들어갔습니다.


😂 레알 데뷔전부터 너무 호나우두다웠어요

2002년 10월 6일.

레알 마드리드와 알라베스의 경기.

호나우두가 후반에 교체로 들어옵니다.
 
홈팬들이 크게 환호합니다.

그리고...

경기장에 들어간 지 거의 바로,

호나우두에게 공이 옵니다.

슛.

골! 😂

데뷔전에서 거의 첫 순간부터 골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한 골을 더 넣었습니다.

레알 데뷔전 2골.

이었습니다. (Real Madrid CF | Web Oficial)

축구팬들에게

“네, 저 아직 골 넣을 줄 압니다.”

라고 인사하는 것 같았어요.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도 호나우두에게 박수를 쳤습니다

2003년 챔피언스리그.

레알 마드리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만났습니다.

장소는 맨유의 홈구장

올드 트래퍼드.
 
호나우두가 한 골.

또 골.

그리고...

해트트릭! ⚽⚽⚽

을 기록합니다.
 
레알은 그날 경기 자체는 3대4로 졌지만 1·2차전 합계에서 앞서 다음 라운드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호나우두가 교체돼 경기장을 나갈 때...

상대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이 일어나 박수를 쳤습니다.

상대 선수가 자기 팀 골문에 세 골을 넣었는데도요. 😮

그만큼

“오늘 우리가 정말 대단한 선수를 봤다.”

라는 인정에 가까운 장면이었습니다.


⚽ 레알에서도 100골을 넘겼습니다

호나우두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공식전

177경기 104골

을 기록했습니다. (Real Madrid CF | Web Oficial)
 
라리가 우승도 경험했고,

2003-04시즌에는 리그 득점왕도 차지했습니다. (Real Madrid CF | Web Oficial)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가 보입니다.

우리가 바르셀로나에서 봤던

20살의 초고속 호나우두

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큰 무릎 수술을 겪은 뒤였고,

몸도 예전보다 무거워졌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래도 골은 계속 넣었다는 것입니다. 😆


🧠 예전처럼 못 달리자 다른 방법으로 골을 넣었습니다

젊은 호나우두는

“내가 그냥 수비수보다 빨리 달리면 되지!”

같은 선수였습니다. 😂
 
하지만 무릎 부상 이후에는 항상 그렇게 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플레이가 바뀌었습니다.

움직임을 더 아꼈고,

공을 받는 위치를 찾았고,

순간적인 몇 걸음에 힘을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원래부터 뛰어났던

🎯 골 결정력

🧠 위치선정

🦶 양발 슈팅

을 더 많이 활용했습니다.
 

괴물 같은 운동능력으로 골을 넣던 선수에서, 영리한 골잡이로 변해간 것입니다.

저는 이것도 호나우두가 대단한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2006년 월드컵에서도 기록 하나를 세웁니다

2006 독일 월드컵.

호나우두의 몸은 1998년이나 2002년과도 달랐습니다.

체중 문제로 비판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또 골을 넣습니다. 😅

일본전에서 두 골.

가나전에서 한 골.

그리고 가나전 골로 월드컵 통산

15골

을 기록합니다.
 
당시 게르트 뮐러의 14골을 넘어 월드컵 역사상 최다득점자가 됐습니다.

이 기록은 2014년 독일의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넘어설 때까지 유지됐습니다. 호나우두의 월드컵 최종 기록은 19경기 15골입니다. (FIFA)


🔴⚫ 이번에는 AC밀란으로 갑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점점 출전시간이 줄어들면서

2007년 호나우두는 이탈리아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예전 팀 인터가 아니라...

라이벌

AC밀란

이었습니다. 😮
 
인터 팬들에게는 상당히 복잡한 장면이었을 겁니다.

호나우두는 밀란에서도 골을 넣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몸은 계속 호나우두를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2008년...

다시 큰 무릎 부상을 당합니다.

이번에는 반대쪽 무릎의 슬개건까지 크게 다쳤습니다.


😢 또다시 모두가 “이제 진짜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호나우두는 이미 30대였습니다.

양쪽 무릎에 모두 심각한 부상 이력이 생겼습니다.
 
젊을 때처럼 다시 돌아오기에는 너무 어려워 보였습니다.

AC밀란과의 계약도 끝났습니다.

유럽 최고의 팀에서 뛰던 시간도 사실상 끝났습니다.

그런데...

호나우두는 한 번 더 축구화를 신었습니다.

이번에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 브라질로.


🖤🤍 코린치안스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웁니다

2009년.

호나우두는 브라질 명문

코린치안스

에 입단합니다.
 
사람들의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있었습니다.

“저 몸으로 아직 프로축구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또 골을 넣었습니다. 😂
 
중요한 경기에서도 골을 넣었고,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코린치안스와 함께

🏆 상파울루 주 챔피언십

🏆 코파 두 브라질

우승도 경험했습니다.

완전히 끝난 줄 알았던 선수가 고향 브라질에서 마지막 우승까지 만든 것입니다.



🥹 2011년, 결국 축구화를 벗었습니다

2011년 2월.

호나우두는 은퇴를 발표했습니다.

나이는 34살이었습니다.
 
호나우두는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힌 부상과 몸 상태 때문에 더 이상 원하는 수준으로 축구를 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갑상선 기능 문제로 체중 관리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사실도 공개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호나우두는 눈물을 보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수비수를 제치던 선수가

이제는 자기 몸 때문에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다고 인정해야 했던 순간이었습니다.


🇧🇷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얼마나 대단했을까요?

호나우두의 월드컵만 보면 더 놀랍습니다.

1994년

🏆 월드컵 우승
출전은 하지 않은 어린 후보
 
1998년

🥈 월드컵 준우승
⚽ 4골
대회 최고의 선수
 
2002년

🏆 월드컵 우승
8골 득점왕
⚽ 결승전 2골
 
2006년

⚽ 3골
월드컵 통산 15골 달성

입니다. (FIFA)
 
브라질 대표팀 통산 공식 기록은 일반적으로

98경기 62골

로 집계됩니다.

월드컵뿐 아니라

🏆 코파 아메리카

🏆 컨페더레이션스컵

등에서도 우승했습니다.


🏆 호나우두가 받은 개인상도 엄청납니다

대표적인 것만 보면

🥇 발롱도르 2회

🥇 FIFA 올해의 선수 3회

🥇 2002 월드컵 득점왕

🥇 1998 월드컵 골든볼

🥇 라리가 득점왕 2회

🥇 유러피언 골든슈

등입니다. (FC Barcelona)
 
그런데 저는 트로피 개수보다 더 놀라운 게 있습니다.

큰 무릎 부상 전과 후에 모두 세계 최고의 선수상을 받았다는 것.

1997년 발롱도르의 호나우두와

2002년 발롱도르의 호나우두는

같은 사람이지만 정말 다른 선수였습니다.


📚 호나우두의 인생을 아주 쉽게 시간순으로 보면

1976년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출생
 

어린 시절

⚽ 풋살과 동네축구를 하며 성장
 

16~17살

🔵 크루제이루에서 폭발적인 득점
 

1994년

🇧🇷 17살에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 월드컵 우승
 

1994~1996년

🇳🇱 PSV

⚽ 57경기 54골
 

1996~1997년

🔵🔴 바르셀로나

⚽ 공식전 49경기 47골

🥇 라리가 득점왕·유러피언 골든슈
 

1997년

🥇 첫 발롱도르

⚫🔵 인터 밀란 이적
 

1998년

🇧🇷 월드컵 준우승

결승 직전 건강 이상
 

1999~2000년

🦵 심각한 오른쪽 무릎 부상

😭 복귀 직후 다시 큰 부상
 

2002년

🇰🇷🇯🇵 한일월드컵 복귀

⚽ 8골

🏆 브라질 월드컵 우승

🥇 두 번째 발롱도르
 

2002~2007년

⚪ 레알 마드리드

⚽ 177경기 104골
 

2006년

🌍 월드컵 통산 15골
 

2007년

🔴⚫ AC밀란
 

2008년

🦵 또 큰 무릎 부상
 

2009년

🇧🇷 코린치안스에서 브라질 복귀
 

2011년

🥹 현역 은퇴

입니다.


😨 그런데 호나우두는 왜 그렇게 무서운 공격수였을까요?

제가 호나우두를 최전성기 최고의 스트라이커 1위로 고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냥 골을 많이 넣어서가 아닙니다.


💨 첫 번째, 미친 듯한 속도

호나우두는 정말 빨랐습니다.

그런데 단순한 100m 달리기 속도만 빠른 게 아니었습니다.

공을 가지고 달리는 속도가 빨랐습니다.

이게 정말 중요합니다.
 
공 없이 빠른 선수는 많습니다.

그런데 호나우두는 공을 발 앞에 두고도 수비수보다 빨랐습니다.


💪 두 번째, 몸싸움까지 강했습니다

빠른 선수에게 수비수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몸을 붙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호나우두는 몸이 강했습니다. 😂
 
수비수가 어깨로 밀어도 버티면서 달렸습니다.

유니폼을 잡아도 앞으로 갔습니다.

특히 젊은 시절 호나우두의 굵은 허벅지를 보면

왜 그렇게 폭발적으로 달렸는지 조금 이해가 됩니다.


🪄 세 번째, 스트라이커인데 드리블러였습니다

보통 9번 공격수에게는

골을 넣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호나우두는 공을 직접 가지고

경기를 만들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중앙선 근처에서 받아도,

수비수 여러 명을 제치고,

혼자 골까지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미드필더가 꼭 완벽한 패스를 넣어주지 않아도 됐습니다.

가끔은 그냥 호나우두에게 공을 주면...

호나우두가 알아서 했습니다. 😂


🧤 네 번째, 골키퍼까지 드리블했습니다

저는 호나우두의 가장 상징적인 특징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격수들은 보통 골키퍼가 나오면 빨리 슛합니다.

호나우두는 골키퍼까지

한 명의 수비수처럼 생각했습니다.
 
골키퍼가 뛰어나옵니다.

공을 한쪽으로 툭.

골키퍼가 넘어갑니다.

호나우두가 반대로 갑니다.

빈 골문.

골.
 
PSV,

바르셀로나,

인터,

브라질 대표팀에서 이런 장면이 정말 많이 나왔습니다.



😢 그래서 무릎 부상이 더 아쉽습니다

호나우두를 이야기하면 항상

“만약 무릎이 건강했다면?”

이라는 질문이 따라옵니다.

왜냐하면 첫 심각한 무릎 문제가 찾아왔을 때 호나우두는 아직 너무 어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호나우두의 엄청난 커리어는

사실 커리어 한가운데 몇 년을 부상으로 잃고도 만든 기록입니다.

그래서 축구팬들은 상상합니다.

“1996년 바르셀로나의 몸을 10년 동안 유지했다면?”

물론 아무도 답을 알 수 없습니다.

축구에 ‘만약’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상상 자체가 호나우두의 최고점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 은퇴 뒤에는 축구 구단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호나우두는 은퇴 후에도 축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방송과 사업 활동을 했고,

나중에는 축구 구단의 주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2018년에는 스페인의 레알 바야돌리드 지분을 사들여 구단 운영에 뛰어들었습니다.

2021년에는 자신이 프로선수로 성장했던 크루제이루에도 투자해 대주주가 됐습니다.

이후 크루제이루 지분은 2024년에 매각했고,

바야돌리드 지분도 2025년에 새로운 투자그룹에 넘겼습니다. (Reuters)
 
그러니까 선수 시절에는

골을 넣는 사람

이었다면,

은퇴 후에는 한동안

축구팀을 운영하는 사람

까지 해본 것입니다.


🌷 저는 호나우두 이야기에서 2002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사실 1996년 호나우두가 더 잘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순수한 실력의 최고점은 1996~98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장 멋진 호나우두를 하나 골라야 한다면...

저는 2002년입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단순히 빠르고 잘하는 천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무릎이 망가졌습니다.

수술했습니다.

복귀했습니다.

또 무너졌습니다.

다시 수술했습니다.

오랫동안 경기장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이 끝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왔습니다.

월드컵에서 8골.

결승에서 2골.

세계 챔피언.

발롱도르.

이보다 더 멋지게 돌아올 수 있었을까요? 🥹


🌼 호나우두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브라질 리우에서 공을 차던 소년이 20살에 유럽 최고의 수비수들을 힘과 속도, 드리블로 부수며 세계 최고의 공격수가 됐지만 가장 빛나야 할 나이에 무릎이 두 번이나 무너졌고,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던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8골과 결승전 2골을 넣으며 다시 세계 챔피언과 발롱도르의 주인공이 된 이야기.” ⚽🇧🇷🏆
 
호나우두보다 오래 전성기를 유지한 선수도 있습니다.

호나우두보다 통산 골이 많은 선수도 있습니다.

호나우두보다 우승컵이 많은 선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성기 호나우두를 직접 본 사람들이 아직도

“내가 본 스트라이커 중 가장 강했다.”

라고 이야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큰 몸으로 수비수를 밀어내고,

윙어처럼 달리고,

미드필더처럼 드리블하고,

골키퍼까지 제친 뒤,

스트라이커처럼 골을 넣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단순히

‘천재’

가 아니었습니다.

O Fenômeno.

‘현상’.

축구팬들이 전에 본 적 없는 일이 경기장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뜻에 가까운 이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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